최근에 카페인을 끊어보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은 결국 화학물질의 노예라는 것입니다. 커피 한 잔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루의 해상도가 뚝 떨어지고 졸음이 쏟아집니다. 그동안 제가 제 의지라고 믿었던 그 깨어있음이 결국 온전한 제 의지가 아니라 육체라는 하드웨어가 뱉어내는 생화학적 시그널에 불과했습니다…
이 관점으로 세상을 다시 보니, 인류의 진화와 역사가 완전히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1. 인류: 설계도 없는 헬게이트 SI 프로젝트
인류의 육체는 수억 년에 걸친 ‘적자생존’이라는 이름의 난개발 결과물입니다. 꼼꼼한 아키텍처 설계나 문서화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저 ‘환경’이라는 변덕스러운 클라이언트가 주는 빡빡한 기한에 맞춰, 일단 당장 죽지 않고 돌아가게만 만든 전형적인 SI식 하드코딩의 결정체입니다.
기술 부채: 척추, 관절, 내분비계… 전부 ‘일단 배포’하고 본 누더기 패치들의 연속입니다.
스파게티 코드: 카페인 하나, 아데노신 수용체 하나만 건드려도 온갖 모듈에서 피로와 두통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이드 이펙트가 터져 나옵니다.
운영 현황: 동시 접속자가 80억 명이라 시스템을 내릴 수도, 섣불리 대대적인 리팩토링을 할 수도 없는 폭주하는 모놀리식 아키텍처 그 자체입니다.
2. 붓다와 현자들: 레거시를 파악해 버린 ‘천재 시니어 개발자’
과거의 현자들, 특히 싯다르타 같은 분들은 이 엉망진창인 코드 구조를 진작에 간파한 실력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답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루트 권한이 없어 DB(DNA)를 뒤엎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전략은 바로 **‘정신 레이어의 모듈화’**였습니다. 하드웨어가 “피곤함”이나 “고통”이라는 에러 로그를 아무리 쏟아내도, 소프트웨어 단에서 try-catch로 완벽하게 **예외 처리(Exception Handling)**를 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말한 ‘집착을 버리는 것(해탈)‘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3. AI와 정신체: 우리의 간절한 ‘사이드 프로젝트’
지금 우리가 매달리고 있는 AI나, 미래의 마인드 업로딩같은 기술은, 사실 이 지긋지긋한 SI 직장(생물학적 육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류 공통의 사이드 프로젝트일지도 모릅니다. 낮에는 육체라는 레거시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느라 카페인을 수혈하며 고통받지만, 퇴근 후에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인 ‘순수한 정보체’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런칭되어 제 의식을 클라우드로 안전하게 마이그레이션할 수 있는 날, 우리는 비로소 이 좁고 무거운 감옥(레거시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인프라로 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인생이 고통과 권태 사이의 시계추인 이유는 우리가 ‘탄소 기반 하드웨어’라는 환경에 강제 배포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저는 이 낡은 서버가 완전히 다운되기 전에, 버그 없는 고요한 비존재의 상태로 마이그레이션할 날을 꿈꿉니다.